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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구한다는 명분이라면 무고한 아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도 괜찮을까요. 메이즈 러너 2: 스코치 트라이얼을 보면서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미로를 탈출하자마자 또 다른 감금과 착취가 기다리고 있다는 설정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생명윤리의 붕괴: 위키드가 보여주는 전체주의의 민낯
미로를 빠져나온 토마스 일행이 처음 도착한 기지는 얼핏 안전해 보였습니다. 책임자 젠슨은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재건 중이라고 했고, 시설은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에서 오히려 불안함을 먼저 느꼈습니다. 너무 친절하고, 너무 정돈되어 있었거든요.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방 안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잠든 채 몸속 무언가를 추출당하고 있었고, 젠슨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위키드의 에바 페이지 박사와 통화 중이었습니다. 인류 구원을 내세운 거대 조직이 면역 보유 청소년들을 생체 자원으로 소모하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공리주의적 생명윤리 침해입니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 원칙인데, 이 논리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메이즈 러너 2는 바로 그 극단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실행하는 조직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건 트리사의 태도였습니다. 기지에서 위키드에 의해 모든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는 절벽 위에서 토마스에게 말합니다. 고통받는 수백만 명을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선의로 포장된 전체주의적 논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섬뜩함은 배가됩니다.
실제로 생명윤리 분야에서는 이런 딜레마를 오래 연구해 왔습니다. 뉘른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의사들의 강제 인체실험에 대한 반성으로 1947년 제정된 국제 의료윤리 원칙으로, 피실험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는 어떤 실험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문화했습니다(출처: 미국 보건복지부 벨몬트 리포트). 위키드가 자행하는 행위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현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국가 기관이나 연구 집단이 "공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신체 자율성을 침해하는 구조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 약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할 때 인간 사회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위험한 무언가가 됩니다.
- 공리주의의 극단화: 다수 생존을 위해 소수 면역 청소년을 생체 자원으로 강제 착취
- 뉘른베르크 강령 위반: 피실험자 동의 없는 인체 추출 행위는 국제 의료윤리의 핵심 원칙을 파괴
- 선의의 배신: 젠슨과 트리사처럼 명분이 선할수록 전체주의적 폭력은 더 교묘하게 정당화됨
- 권력 무제한화: 위키드처럼 견제받지 않는 조직이 약자를 수단으로 삼을 때 문명은 붕괴
연대의 윤리: 폐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코치(Scorch), 즉 바이러스 플레어(Flare)가 휩쓸고 간 폐허의 사막 지대를 배경으로 한 2편은 액션의 밀도가 높아진 만큼, 인물들 간의 신뢰와 연대가 그 위에서 얼마나 버티는지를 훨씬 날카롭게 시험합니다. 플레어란 뇌를 침범해 인간을 크랭크(Crank), 즉 이성을 잃은 좀비 상태로 변이 시키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가리킵니다.
윈스턴이 크랭크에게 물리고 감염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제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는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걸 느끼고 친구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비명과 총성이 멀어지던 그 장면에서 저는 연대의 반대편, 즉 혼자 감당하는 존엄의 무게를 생각했습니다.
브랜다와 토마스가 무너진 도시를 탈출하는 시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다 역시 탈출 과정에서 크랭크에게 물립니다. 두 사람이 낭떨어지 끝에서 서로를 붙잡던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감염과 소멸의 공포 앞에서도 손을 놓지 않겠다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이 관객에게 오래 남는 이유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선택의 무게 때문입니다.
오른팔(Right Arm) 조직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도 연대의 본질이 계속 시험받습니다. 오른팔이란 위키드에 맞서 저항하는 반조직으로, 시스템 바깥에서 생존자들을 보호하려는 세력입니다. 이들의 캠프가 위키드의 급습으로 무너지는 장면에서, 토마스는 도망치는 대신 스스로 붙잡히는 길을 선택합니다. 친구들을 되찾기 위해서였죠.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극한 상황에서 개인이 얼마나 쉽게 잔인해지는지를 연구했지만(출처: 미국심리학회(APA)), 동시에 그 반대편에도 주목했습니다. 극한일수록 타인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이타적 행동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토마스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연대는 그 증거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작품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누가 살아남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며 살아남는가"였다는 점입니다. 소수와 약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윤리적 안전망이 무너질 때, 살아남은 세상이 과연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 것이죠.
자주 묻는 질문
Q. 메이즈 러너 2 스코치 트라이얼, 1편 안 보고 봐도 되나요?
A. 1편의 맥락 없이는 주요 인물 관계와 위키드의 목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토마스와 트리사의 관계, 미로 실험의 목적을 모르면 2편의 배신 장면이 주는 충격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1편을 먼저 보시는 걸 권합니다.
Q. 크랭크가 좀비랑 다른 점이 뭔가요?
A. 크랭크는 플레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점진적으로 이성을 잃어가는 인간입니다. 일반적인 좀비물과 달리, 초기 감염 단계에서는 여전히 의식과 감정을 유지합니다. 윈스턴이 스스로 뒤에 남는 장면이 그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단순 공포 크리처가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의 대상이 됩니다.
Q. 트리사가 위키드 편을 드는 이유가 뭔가요?
A. 기지에서 위키드에 의해 모든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는 수백만 명의 생존이 소수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그 결론은 전체주의적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악의가 아닌 확신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Q. 오른팔 조직은 결국 위키드를 이길 수 있나요?
A. 2편에서 오른팔의 캠프는 위키드의 급습으로 무너집니다. 하지만 조직 자체가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으며, 이야기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마스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다음 행동을 선언하는 것이 3편의 전제를 깔아줍니다.
결론
메이즈 러너 2는 박진감 있는 디스토피아 어드벤처로서는 충분히 재밌습니다. 스코치의 폐허, 크랭크 떼, 쉴 틈 없는 추격전. 장르적 쾌감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가 아쉬운 건 그 장르적 자극이 너무 강해서,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생명윤리 붕괴와 전체주의적 착취라는 묵직한 질문이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는 점입니다.
위키드가 자행하는 강제 생체 추출, 트리사의 공리주의적 선택, 젠슨의 이중성. 이 모든 것이 단순한 빌런 설정으로 소비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소수와 약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윤리적 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3편 데스 큐어까지 이어지는 결말이 이 질문에 얼마나 진지하게 답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