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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주요 사건과 마지막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밤의 시골길, 고장 난 자동차를 살펴주는 남자의 등 뒤에서 운전자가 권총을 꺼냅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은 타고난 범죄자가 아니라 25년 동안 종이를 만들며 가족을 책임져 온 가장 만수입니다. 그는 왜 취업 경쟁자를 살해하게 되었고, 아내 미리는 마당에서 시신을 발견하고도 왜 다시 흙으로 덮었을까요? 영화는 그 답을 “어쩔 수가 없다”는 말 속에 숨겨 둡니다.

25년 경력이 한순간에 사라진 만수
태양제지 특수지 부문에서 일하던 만수는 아내 미리, 두 아이, 반려견과 함께 어렵게 되찾은 집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누립니다. 그러나 회사가 외국계 자본에 인수되면서 갑작스럽게 해고됩니다. 회사에서 보낸 장어는 포상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직원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였습니다. 해고에 항의할 말을 미리 연습했던 만수는 정작 통보 앞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석 달 안에 재취업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퇴직금은 줄어들며, 첼로에 재능을 보이는 딸의 레슨비와 대출금은 계속 쌓입니다. 가족회의에서는 집을 팔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만수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수없이 이사한 끝에 되찾은 고향이자 가장으로서 성공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집을 잃는 일은 재산의 손실을 넘어 자신의 인생 전체가 실패했다는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자리가 없다면 경쟁자를 없앤다는 발상
만수는 문제지의 반장 자리를 원하지만 이미 뛰어난 경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가짜 구인광고를 내고 지원서를 받아 구범모, 고시조, 최선출을 경쟁자로 추립니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자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취업 준비가 아니라 제거 계획으로 변합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범죄를 합리화하는 명분이 되고, 아버지가 남긴 권총은 그 왜곡된 결심을 실행할 수단이 됩니다.
첫 번째 대상 구범모는 만수처럼 종이밖에 모르는 실직자입니다. 구범모 역시 자신의 처지를 두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수는 그에게서 초라해진 자기 모습을 보지만 연민 대신 폭력을 선택합니다. 두 번째 대상 고시조는 딸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가장입니다. 고장 난 차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던 선의를 만수는 등 뒤에서 배신합니다. 피해자들은 악당이 아니라 만수와 닮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없애는 과정은 경쟁자 제거인 동시에 만수가 자신의 양심과 동료의식을 하나씩 지우는 과정으로 읽힙니다.
최선출의 제안에도 멈추지 못한 이유
마지막 대상 최선출은 술자리에서 만수를 동료로 받아들이고, 회사에 추가 채용을 건의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살인의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만수는 이미 두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면 앞선 범행이 헛된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서기보다 더 큰 잘못으로 이전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상황 설명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기 위한 자기최면이 됩니다.
그는 오랫동안 끊었던 술까지 다시 마시며 과거의 폭력적인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공포에 질렸지만 범행이 반복될수록 실행은 대담해집니다. 면접장에서 만수가 창의적인 발상과 집요한 실행력을 강조하는 장면은 섬뜩한 역설을 만듭니다. 회사가 요구하는 유능함의 언어가 그가 범죄에 사용한 방식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미리는 왜 시신을 다시 묻었을까
미리는 사과나무 아래를 파고 남편이 감춘 시신을 발견합니다. 신고하거나 도망칠 수 있었지만 다시 흙을 덮고, 아이에게는 돼지를 묻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가족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진실을 밝히면 남편은 체포되고 아이들의 생활과 집은 무너집니다. 미리는 범죄를 몰랐던 가족에서 비밀을 보호하는 공범으로 경계를 넘어갑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집의 의미입니다. 만수가 살인을 시작한 표면적 이유도 이 집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신 위에 사과나무가 심어진 순간 집은 행복의 공간이면서 죄를 감춘 무덤이 됩니다. 미리가 부동산에 집을 팔지 않겠다고 알리는 말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선택인 동시에 비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사과나무는 새 출발과 결실을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뿌리 아래에는 폭력과 거짓말이 묻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미리의 행동은 남편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만수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믿었고, 미리 역시 가족을 지키려면 덮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합니다. 영화는 이를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과 책임이라는 말이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할 때 가족 전체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오염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 경쟁자는 만수의 또 다른 얼굴이다
구범모와 고시조, 최선출은 단순히 일자리를 빼앗을 경쟁자만은 아닙니다. 종이에 대한 자부심,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해고 뒤에도 경력을 놓지 못하는 모습까지 모두 만수와 닮았습니다. 구범모는 실직으로 무너진 현재의 만수이고, 고시조는 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아버지이며, 최선출은 만수가 되찾고 싶어 한 현직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만수는 이들을 제거할수록 취업에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인간답게 만들던 부분을 차례로 없앱니다.
딸 리원이 아버지에게 들었던 ‘벌레 먹은 나무’ 이야기를 되돌려주는 장면도 중요합니다. 만수는 자신을 병든 나무처럼 여겼지만, 가족을 살리겠다는 그의 행동이 오히려 집 전체에 벌레를 퍼뜨렸습니다. 말을 아끼던 아이가 그 비유를 반복하는 순간, 부모가 숨긴 진실이 설명되지 않아도 가족의 불안과 변화를 아이가 이미 감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인 공장과 벌목 기계가 보여준 결말
만수는 마침내 문제지에 취업하지만 그가 얻은 승리는 허무합니다. 새 공장은 사람 없이 움직이는 자동화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가동은 또 다른 인원 감축을 예고합니다. 만수가 세 사람을 없애 차지한 자리조차 오래 보장되지 않는 셈입니다. 마지막의 무인 벌목 기계는 해고를 사람의 목을 자르는 도끼질에 비유했던 만수의 말을 시각적으로 되돌려 줍니다. 이제 도끼를 휘두르는 주체마저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제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해고하며, 만수는 살인하며, 미리는 범죄를 덮으며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다른 선택지는 존재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은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한 선택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시신 위에서 이어지는 가족의 평온과 리원의 첼로 연주는 그래서 따뜻하기보다 불안합니다. 겉으로는 집을 지켰지만 그 집의 뿌리에는 누구도 꺼내 말할 수 없는 죄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및 작품 정보
이 글은 제공된 결말 포함 리뷰 영상을 참고해 줄거리와 의미를 새롭게 정리한 감상·해석 글입니다. 자세한 영상은 유튜브 원본 리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바탕으로 연출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