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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원더풀스>를 처음 틀었을 때, 1999년 세기말 배경에 개차반·왕호구·왕진상 세 사람이 초능력을 얻는다는 설정이 그냥 가볍고 유쾌한 히어로물이려니 했거든요. 그런데 회차가 쌓일수록 이게 단순한 코믹 액션이 아니라는 게 보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인체 실험,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거대 자본, 그리고 그 실험의 피해자들이 평생 짊어져야 하는 신체적·심리적 후유증. 웃고 울다가 결국 묵직한 뒤통수를 맞는 드라마였습니다.


줄거리 — 개차반 셋이 영웅이 되기까지
제가 직접 1회부터 8회까지 쭉 이어서 봤는데, 이 드라마의 서사 설계가 생각보다 정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유쾌한 슈퍼히어로 코미디지만, 각 인물의 초능력이 만들어진 방식 자체가 이미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배경은 1999년. 세포 재생 분야 전문가인 하원도 박사는 영생하는 인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해성시 지하 실험실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생체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여기서 '분더킨더(Wunderkinder)'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독일어로 '기적의 아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하원도가 실험 생존자들에게 붙인 호칭으로, 초능력이 발현된 아이들을 지칭합니다. 실험 도중 폭발 사고로 하원도가 수감되고 20여 년이 흐른 뒤, 후원자 남순규 회장이 그를 석방시켜 실험을 재개하게 만드는 것이 전체 사건의 도화선입니다.
주인공 은체이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었습니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꿈 하나로 버텨온 인물인데, 가짜 인질극을 벌이다 진짜로 심장이 멈춰 사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체니의 심장이 사실 분더킨더 프로젝트의 피해자, 즉 '영혼의 아이 1730번'의 심장이었던 겁니다. 폭발 사고로 뇌의 절반이 손상된 채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된 그 아이의 심장을, 후원자 김전복이 손녀 체니에게 이식했던 거죠.
이 심장 덕분에 체니는 되살아나고, 하수구 실험약에 노출된 세 사람에게는 각자의 결핍과 꿈에서 비롯된 초능력이 생깁니다. 체니는 순간 이동, 강로빈은 괴력, 송경훈은 어떤 표면에든 달라붙는 끈끈이 능력. 초능력이 발현되는 트리거(trigger)—즉 능력을 작동시키는 특정 심리적 조건—도 각자의 상처와 맞닿아 있습니다. 체니는 심장이 빠르게 뛰어야, 로빈은 상처 주는 말을 들어야, 경훈은 거짓말을 해야 능력이 발동됩니다.
- 은체이: 순간 이동 / 트리거 — 심장이 빠르게 뛰는 상황
- 강로빈: 괴력 / 트리거 — 모욕적이거나 상처 주는 말을 들을 때
- 송경훈: 끈끈이 부착 능력 / 트리거 — 거짓말을 하는 순간
- 이운정: 염력 / 트리거 — 항시 발동 가능, 단 감정 조절이 관건
과학윤리 — 영생 실험이 현실이었다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제가 계속 걸리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게 정말 현실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만약 하원도 박사 같은 인물이 실제 대한민국에 존재했다면, 이는 단순한 연쇄 범죄가 아닙니다. 출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규정하는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인도적 범죄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광범위한 공격 행위로, 살인·감금·고문·강제 실험 등이 포함됩니다. 드라마 속 분더킨더 프로젝트는 이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더 섬뜩한 건 후원 구조입니다. 드라마에서 남순규 회장과 김전복은 각자의 이기적인 목적—영생, 손녀의 생명—을 위해 이 실험을 금전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느낀 건, 거대 자본이 윤리 감시망을 우회할 수 있을 때 과학 기술이 얼마나 잔혹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연구 윤리 지침은 인체 실험에서 충분한 정보 제공 후 동의(informed consent)를 핵심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험자가 실험의 목적, 위험, 절차를 충분히 이해한 뒤 자발적으로 동의해야만 실험이 허용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를 납치해 실험한 분더킨더 프로젝트는 이 원칙의 정반대에 서 있는 셈입니다.
만약 해성시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약물 폭탄을 이용한 대규모 세뇌 시도는 국가 비상사태 선포와 계엄령 발동이 불가피한 수준의 사태입니다. 일반 경찰력으로는 초능력자를 동원한 테러를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동시에 이 실험을 후원한 자본과 이를 방조한 부패 카르텔은 국내법은 물론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되어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드라마가 코믹한 포장지로 감싸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회비판 — 이 드라마가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유
제 경험상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유쾌함에 집중해서 메시지를 날리거나, 메시지에 집중해서 재미를 잃거나. 그런데 <원더풀스>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잡으려 했고, 제가 보기엔 꽤 성공한 편입니다.
세 주인공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개차반(은체이), 왕호구(강로빈), 왕진상(송경훈). 학력도 변변찮고 직업도 없고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인물들입니다. 19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중요한데, IMF 외환위기(1997~1998년) 이후 정리해고와 가족 해체가 만연하던 시기였습니다. 경훈이 IMF 여파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 무시당한다는 설정은 그냥 개인사가 아니라 당대의 사회 구조적 상처를 반영한 것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나온 용어로, 비극을 관람하면서 공포와 연민을 느끼고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현대적 의미로는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는 짜릿한 순간을 가리킵니다. 동네의 흠집 많은 문제아 셋이 약물 폭탄을 온몸으로 막아 해성시를 구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제가 느낀 감정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혼의 아이 1730번은 죽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고통은 실험자들에게 전혀 가닿지 않았죠. 분더킨더 프로젝트의 생존자인 이운정은 20년이 지나도록 악몽을 꾸고,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인물로 살아갑니다. 이게 단순히 드라마적 설정이 아니라, 피해 트라우마(trauma)—즉 극심한 충격적 경험이 남기는 장기적인 심리·신체적 후유증—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체니가 하원도에게 "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봅니다. 사회가 쓸모없다고 낙인찍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몸을 던져 도시를 구하고, 정작 그 사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결말 구조는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입니다. 세뇌당한 시민들은 초능력자들이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더풀스 쿠키 영상에서 하원도가 살아난 이유가 뭔가요?
A. 주란이 하원도의 몸에 체니의 피로 만든 혈청을 주사했기 때문입니다. 체니의 심장이 영혼의 아이 1730번의 것으로,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혈청 덕분에 하원도가 자신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음에도 체니와 유사한 소생 능력을 얻어 되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시즌 2 가능성을 열어두는 복선으로 읽힙니다.
Q. 체니가 폭탄을 안고 사라진 뒤 49일이나 걸려 돌아온 이유는요?
A. 폭탄과 함께 지구 반대편까지 순간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체니의 순간 이동 능력은 심장이 빠르게 뛰어야 작동하는데, 폭발 직후 능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한 번에 돌아오지 못하고 여러 번 끊어서 이동하다 보니 49일이 걸린 겁니다. 이 설정이 개인적으로는 능력의 한계를 자연스럽게 설명한 방식이라고 봤습니다.
Q. 이운정이 처음에 체니를 공격한 이유가 뭔가요?
A. 체니가 영혼의 아이, 즉 분더킨더 프로젝트에서 죽어도 살아나는 능력을 가졌던 1730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운정은 1730번이 남자였다고 기억하고 있어서 확신하지 못했고, 실제로 죽었다가 소생하는지를 직접 검증하려 한 것입니다. 운정 입장에서는 잔인한 방식이었지만, 20년간 아무도 믿지 못하며 살아온 인물로서 이해 가능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Q. 분더킨더들의 초능력 부작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나요?
A. 초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몸이 점점 고장납니다. 드라마에서 김파로는 장풍 능력을 과하게 쓰다가 온몸이 돌처럼 굳어 사망했습니다. 이는 실험 당시의 약물 부작용이 신체 세포를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영혼의 아이의 소생 능력이 이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는 열쇠로 설정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론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장면은, 체니가 폭탄을 안고 사라지는 것도 하원도가 쿠키에서 눈을 뜨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혼의 아이가 수백 번 죽고 살아나면서도 매번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는 운정의 회상이었습니다. 코믹한 외피 안에 이 장면 하나가 박혀 있는 한, 원더풀스는 단순히 웃기고 끝나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서의 완성도, 1999년 세기말이라는 시대 고증, 그리고 초능력의 설정 방식까지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봅니다. 쿠키에서 하원도가 부활한 만큼 시즌 2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주란과 하원도가 다시 해성시를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지켜볼 만합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1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