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부모는 언제부터 부모가 되는 걸까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몫을 조금씩 내어주면서부터일까요.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저는 애순과 관식의 사랑보다 그 사랑이 부모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광례가 애순을 위해 견딘 바다와 애순·관식이 금명을 위해 펼쳐놓은 삶의 그물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광례에서 애순으로 이어진 모성의 무게
남편을 잃고 재혼한 광례에게는 두고 온 딸 애순이 있었습니다. 광례는 제주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따며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마음속에서는 한 번도 딸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전복 백 개를 주고 엄마의 하루를 사고 싶다”는 애순의 마음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는 모녀의 슬픔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는 딸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광례는 결국 전 시댁으로 달려갑니다.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분노를 터뜨리며 “내 딸 내가 찾아가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광례의 선택이 단순히 딸을 데려오는 행동만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가난한 여성에게 자식을 키울 권리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세상을 향한 저항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넉넉해진 것도 아니고, 애순에게 좋은 방과 풍족한 음식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애순은 왜 엄마와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엄마니까”라고 답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생활환경보다 자신을 끝까지 선택해 주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짧은 대사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만 저는 작품이 광례의 희생을 아름답게만 기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광례는 딸을 사랑했지만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기침하면서도 바다에 들어가야 했고, 딸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품었습니다. 이를 ‘위대한 모성’이라는 말로만 포장하면 광례가 감당해야 했던 가난과 사회적 부조리가 가려질 수 있습니다.
광례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강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아픈 몸을 쉬게 해줄 안전망이었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책임이 언제나 어머니 한 사람의 노동과 인내에 기대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광례의 사랑에 감동하면서도, 왜 그토록 사랑하는 모녀가 함께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는지 묻게 됐습니다.
- 광례의 바다 노동은 생계와 모성의 무게를 동시에 보여준다.
- “엄마니까”라는 애순의 대답은 아이에게 필요한 정서적 안전감을 의미한다.
- 광례의 분노는 딸을 지키려는 모성이자 가난한 여성에게 냉혹했던 사회를 향한 저항이다.
- 부모의 희생을 아름답게만 소비하면 그 희생을 강요한 현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애순과 관식, 부모가 되어 펼친 삶의 그물
성장한 애순 역시 갈 곳을 찾아 방황합니다. 대학에 보내주고 시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떠나려는 애순에게 관식은 자신도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애순의 불안은 사랑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집에 얹혀살며 눈치를 보았던 기억과 앞으로도 같은 삶을 반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애순이 관식에게 “오빠가 없어야 내가 산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관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만 믿고 선택했다가 다시 가난에 갇힐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애순에게 결혼은 낭만적인 선택인 동시에 생존을 결정하는 문제였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지만 삶은 사랑의 완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빚쟁이가 찾아오고 쌀독이 비며, 애순은 아내와 며느리와 어머니라는 역할을 한꺼번에 배워야 했습니다.
저는 애순이 “빨리 늙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청춘이 반드시 찬란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젊음은 가능성의 시간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서툰 상태로 책임부터 떠안아야 하는 시기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사랑이 고난을 없애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편으로 남아 있었기에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고 보여줍니다.
부모가 된 애순과 관식은 딸 금명을 자신들과 다른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 금명에게 관식은 넘어지면 아빠에게 뛰어오라고 말합니다. 금명은 훗날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관식의 부성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식은 딸 대신 외줄을 걸어주지는 못했지만, 실패해도 추락하지 않도록 언제나 뒤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의 평생 꿈이었던 배움은 딸 금명의 현실이 됩니다. 광례가 애순에게 주지 못했던 기회가 애순을 거쳐 금명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한 세대의 좌절이 다음 세대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과정은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녀가 자신의 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삶의 바닥을 받쳐주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이 언제나 공평하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 은명은 누나를 이기기 위해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돈밖에 없었다며 서러움을 터뜨립니다. “차라리 안 사랑하는 게 낫지, 덜 사랑하는 건 치사하다”는 말은 가족 안에서 비교당했다고 느낀 자식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부모는 모든 자식을 사랑했다고 믿지만, 자녀가 체감하는 사랑의 크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작품은 따뜻한 가족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헌신적인 부모라고 해서 모든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며,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애순이 “귀한 것만 보여줄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모습은 부모 역시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서 계속 실수하고 뒤늦게 배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보이는 사랑
성인이 된 금명이 힘들 때마다 집을 찾으면 애순과 관식의 하루는 갑자기 분주해집니다. 부모는 딸이 오기 전까지 적막했을 집을 감추듯 밥을 차리고, 살이 빠질까 걱정하며 먹을 것을 내놓습니다. 금명은 자신이 세상에서 조금도 사라지지 않도록 부모가 먹이고 또 먹였다고 회상합니다.
멀리 사는 딸의 안부를 확인하고, 고기를 잡아오겠다는 말 한마디에 힘을 얻는 관식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자식에게는 별것 아닌 손짓이지만 부모에게는 고된 하루를 견디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가족 사이에서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걱정하는 것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금명이 결혼을 앞두자 관식은 평생의 짝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합니다. 관식에게 금명은 다 자란 성인이면서도 여전히 넘어지면 자신에게 달려올 어린아이입니다. “아빠는 맨날 여기 있어”라는 말은 딸을 붙잡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에 살든 돌아올 자리가 남아 있다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금명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애순과 관식의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언제나 부모의 첫 번째였다는 사실, 부모가 해준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때로 부모가 살아온 시간만큼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된 뒤에야 부모의 희생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준 부모까지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효도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서툰 방식으로 사랑하고 후회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폭싹 속았수다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A.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이 청춘과 결혼, 가난과 육아, 노년을 지나가는 과정을 사계절처럼 담은 가족 드라마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대물림되는 꿈과 희생을 함께 다룹니다.
Q.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무슨 뜻인가요?
A. 제주어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는 ‘참 애쓰셨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순과 관식을 비롯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견뎌낸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인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Q. 관식이 금명에게 펼쳐준 ‘그물’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A. 딸의 실패를 대신 막아주거나 인생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주는 부모의 안전망을 뜻합니다. 금명이 새로운 길에 도전할 수 있었던 힘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Q. 은명은 왜 부모에게 덜 사랑받았다고 느꼈나요?
A. 부모의 관심과 기대가 금명에게 더 많이 향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형편에 맞게 자녀를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은명에게는 자신이 누나보다 부족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는 같은 가족 안에서도 사랑을 주는 방식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Q. 이 작품이 부모의 희생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가능한가요?
A. 부모의 희생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런 비판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광례와 애순의 고통을 개인의 인내로만 해결하지 않고 가난, 여성의 노동, 교육 기회의 차이와 연결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현실을 함께 비판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폭싹 속았수다는 특별한 영웅의 성공담이 아니라 별것 없어 보이는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광례는 애순을 위해 바다에 들어갔고, 애순과 관식은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넓은 세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삶의 바닥을 받쳤습니다. 부모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은 다음 세대에서 조금씩 현실이 됐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랑이 거창한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으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밥을 차리고, 학교 뒤편에서 기다리고, 실패해도 돌아올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합니다. 자녀는 그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부모는 사랑하면서도 자녀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이 가족의 모습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툴고 부족해서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말아야 합니다. 광례와 애순이 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시대를 온몸으로 견딘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감동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의 부모에게는 같은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인사는 성공한 사람에게만 건네는 축하가 아닙니다. 꿈을 모두 이루지 못했더라도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를 버텨낸 사람에게 보내는 다정한 위로입니다. 애순과 관식의 사계절을 따라가고 나면 우리 역시 부모에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게 같은 말을 건네고 싶어 집니다. 참 애썼고, 정말 수고 많았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