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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잠깐 멈칫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1년 차 전공의 혼자서 풀 다이레이션(Full dilation) 산모를 붙잡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분만이 임박한 상황에서 교수도, 상급 전공의도 곁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뭉클함보다 먼저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걸까요.

드라마가 포착한 산부인과의 진짜 풍경
솔직히 처음 몇 화를 볼 때는 이 드라마가 단순한 직장 청춘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자 사연을 가진 레지던트 1년 차 넷이 서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한 구조였거든요. 그런데 회가 거듭될수록 그 안에서 보이는 것들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극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역시 분만실 시퀀스였습니다. 풀 다이레이션, 즉 자궁경부가 완전히 10cm 열려 분만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1년 차 전공의 오이형이 사실상 혼자 산모를 담당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풀 다이레이션이란 분만 1기의 마지막 단계로, 이 시점부터는 즉각적인 분만 준비와 숙련된 의료진의 직접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응급에 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자리에 1년 차가 단둘이 남겨진 것입니다.
동시에 다른 라인에서는 수술실 배정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집니다. 명은원이 응급인 척 거짓 보고를 해서 수술실을 선점하고, 그 결과 오이영이 엉뚱한 상황에 내몰리는 장면입니다. 이건 단순한 직장 내 갈등이 아닙니다. 수술실 오더링(Ordering), 즉 수술 배정 우선순위는 환자의 상태와 골든타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의료적 판단입니다. 여기서 골든타임이란 응급 상황에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결정적 시간대를 말하며, 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는 환자 안전을 직접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단순한 드라마적 긴장감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실제 대학 병원에서 반복된다면, 그건 개인의 비양심을 넘어 시스템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 인력 부족 문제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출처: 대한의사협회).
- 풀 다이레이션(Full dilation): 자궁경부 완전 개대, 즉각적인 숙련 의료진 개입 필요
- 수술실 오더링(Ordering) 조작: 환자 골든타임 침해, 의료법 위반 소지
- 1년 차 단독 분만 대기: 인력 부족 문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위험
감동으로 덮은 시스템의 균열
이 드라마의 가장 강한 매력은 캐릭터입니다. 제 경우엔 의대 수석 출신 김사비의 동의서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챕터를 책에서 찾아 공부까지 해왔지만, 정작 환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장면입니다. 수치로는 1등이지만, 사람 앞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전직 아이돌 엄제일, 레지던트 재수생 오은영, 파격적 패션의 박남경까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핍이 부딪히고 봉합되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감정선을 만듭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가 관계의 따뜻함만큼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 따뜻함이 구조적 문제를 너무 효과적으로 감싸버린다는 것입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권위적인 수직 구조, 이른바 마귀할멈으로 불리는 교수의 절대적 권력 앞에서 전공의들이 겪는 고통이 모두 '성장통'으로 낭만화됩니다. 이 지점이 제 경험상 이 드라마의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난, 특히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 감소는 수년째 지속된 사회적 문제입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산부인과를 포함한 필수과목 전공의 충원율은 타 과에 비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런 현실에서 인력 부족을 핑계로 초보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는,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흐뭇한 성장 스토리로 마무리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시한폭탄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모든 것을 외면하는 건 아닙니다. 명은원의 이기적인 수술실 조작이 결국 동료들에게 들통나는 장면, 남경이 연미소 환자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사-환자 관계의 본질, 이런 장면들은 분명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충분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개인의 각성과 동기애로 봉합될 수 없는 구조적 균열이 이 드라마 전반에 걸쳐 감상적 서사 뒤에 조용히 방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라마에서 1년 차 전공의가 혼자 분만을 담당하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요?
A.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풀 다이레이션 이후 분만 단계에서는 숙련된 전문의 혹은 고년 차 전공의의 직접 감독이 필수입니다. 다만 인력 부족이 심각한 일부 현장에서는 이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 내부의 솔직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Q. 수술실 배정을 거짓으로 조작하면 실제로 어떤 처벌을 받나요?
A. 수술 배정 조작으로 환자의 골든타임이 침해되고 실제 피해가 발생한다면, 이는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행위입니다. 더불어 의사 면허 정지나 취소 등의 행정 처분도 따를 수 있으며, 단순한 직장 내 비위 수준으로 볼 수 없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Q.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낮은 이유가 뭔가요?
A. 야간 분만과 응급 제왕절개가 상시 발생하는 산부인과 특성상 노동 강도가 극도로 높고, 의료사고 위험 노출도 큽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와 소송 위험까지 더해져, 많은 의대생들이 산부인과 지원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드라마가 이 현실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Q.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완성된 의사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레지던트 1년 차라는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실수와 두려움, 위계와 갈등이 훨씬 날것으로 드러나는 편이고, 그만큼 현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물음을 더 자주 던지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결론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분명 잘 만든 드라마입니다. 캐릭터의 결핍을 섬세하게 설계하고, 생명이 오가는 현장의 긴장감을 실감 나게 담아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몇 번 마음이 뭉클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 드라마가 선택한 방향에 대한 의문이 커졌습니다. 필수의료 붕괴, 전공의 과로, 수직적 위계 구조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를 네 사람의 눈물과 우정으로 봉합하는 서사 방식은 보는 사람을 위로하지만, 정작 바뀌어야 할 것들은 그대로 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본 후 "저 의사들 참 대단하다"는 감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저들이 저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질문이 있어야, 드라마가 아닌 현실도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