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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42만 관객.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가 D-WAR였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400억 원이라는 제작비, 그리고 그 돈으로 완성된 결과물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이무기 설화라는 한국 고유의 전설을 할리우드 도심 괴수물 문법에 얹어 만든 이 영화가, 왜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국뽕 마케팅이 흥행을 만든 방식
D-WAR의 흥행을 설명할 때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보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제가 직접 당시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영화관 밖에서 이미 승부가 상당 부분 결정돼 있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 기제가 바로 민족주의적 감성 마케팅, 즉 국뽕 마케팅입니다. 여기서 국뽕이란 과도한 민족주의 감성에 기반해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D-WAR는 이 흐름을 정확하게 탔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만의 기술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발언을 거듭했습니다. 이 발언이 미디어를 타면서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애국적 행동으로 포지셔닝됐습니다. 저는 이 구조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냉정히 말하면 이건 비판적 영화 비평을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를 냈습니다. 영화가 별로라고 말하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죠. 그게 과연 건강한 방식이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회의적입니다.
한편으로 심형래 감독의 진심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번에 영화를 다시 꺼내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믿었다는 겁니다. 진정성 없이는 400억을 쏟아붓는 일을 반복할 수 없습니다. 용가리가 실패한 뒤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 꽂혀 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며 가능성을 읽었다는 일화는, 그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스타일이라는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집착의 크기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는 사실상 500년 주기로 반복되는 운명론적 설정 하나에 기대고 있습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의 뼈대, 즉 사건이 어떤 인과 관계로 연결되는지를 가리킵니다.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으면 우주를 수호하고, 악한 이무기 브라퀴가 여의주를 빼앗으면 세상이 파멸한다는 단순한 이 구도는, 오히려 잘 쓰면 강력한 신화적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뼈대에 살이 붙지 않았다는 겁니다. 주인공 이든과 나린의 관계는 감정적 설득력이 거의 없고, 500년을 이어온 운명이라는 설정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흥행 성적과 관련해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를 참조하면, 2007년 한국 영화 전체 관객 수 기준으로 D-WAR는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이 수치만 보면 성공작입니다. 하지만 흥행과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D-WAR만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도 드뭅니다.
- 국뽕 마케팅: 민족주의 감성을 자극해 비판적 수용을 차단하는 상업적 전략
- 서사 구조의 빈약함: 신화적 설정은 있으나 인물 간 감정적 연결이 성립하지 않음
- 흥행 1위라는 수치는 완성도의 증거가 아닌, 당시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
- 심형래 감독의 진정성은 인정하되, 선택적 정보 수용의 한계도 존재
서사 분석으로 다시 본 D-WAR의 한계와 가능성
제가 D-WAR를 다시 본 건 솔직히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와 지붕, 수묵화 질감의 채색, 한글 자막까지 동양적 미감을 살리려는 시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도가 오프닝에서 거의 끝난다는 점이었습니다.
크리처 디자인(creature design) 측면에서 보면 D-WAR는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크리처 디자인이란 영화 속 가상의 생명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전작 용가리가 일부 괴수물 매니아 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디자인 자체가 가진 마초적이고 독특한 조형감 덕분이었습니다. D-WAR의 이무기 역시 할리우드 괴수물과는 다른 동양적 이미지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은 존재합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공정한 평가가 됩니다.
하지만 개연성(plausibility) 문제는 다릅니다. 개연성이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인물의 행동이 납득 가능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브라퀴 군대가 나린을 잡으러 오면서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나린이 죽으면 500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데 왜 포를 쏘는가, 라는 질문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 해도 해소가 안 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추고 두 번 되감아 봤는데, 역시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연출 방식(mise-en-scène)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세트, 소품 등을 통해 감독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D-WAR의 조선시대 장면은 80년대 달력 화보 같은 구도와 와이어 액션, 흙먼지 연기 등이 혼재돼 있어 시대감이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솔직히 이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를 정조준한 영화라면 최소한 시각적 완성도에서는 기준을 넘어야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의 비교도 자주 거론됩니다. 심형래 감독이 직접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혹독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은, 창작자로서의 자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J.R.R. 톨킨의 원작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반지의 제왕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서사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출처: The One Ring - Tolkien Society). 그 작품의 스토리를 이해 못 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건, 적어도 외부에서 봤을 때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태도였습니다.
제가 이번 감상에서 가장 아쉽게 본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국내의 실패에서는 보완점을, 해외의 작은 성취에서는 발전점을 동시에 읽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겁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방식은 진심을 지켜주지만 성장을 막습니다. 심형래 감독의 작업 방식이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앞서간 것보다 주변을 충분히 듣지 않은 쪽이 더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D-WAR가 842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심형래 감독이 "우리 기술로 할리우드를 공략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영화 관람이 애국적 행동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비판적 시선이 자리 잡기 전에 흥행이 먼저 완성된 구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뽕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Q. 심형래 감독이 용가리 이후에도 D-WAR를 만든 이유가 뭔가요?
A. 용가리가 국내에서 실패한 뒤, 심형래 감독은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서 자신의 작품이 유통되는 것을 보며 해외 가능성을 읽었습니다. 괴수물 매니아 사이에서 용가리의 크리처 디자인이 나름의 반응을 얻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실패에서 서사와 연출의 보완점을 읽지 않고 해외 성취만을 확신의 근거로 삼은 것이 D-WAR에도 같은 한계를 반복하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Q. D-WAR의 이무기 설화 설정 자체는 괜찮은 소재였나요?
A. 소재 자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500년 주기로 반복되는 운명론적 설정과 선악 이무기의 대결 구도는 신화적 서사로 발전할 수 있는 뼈대였습니다. 문제는 그 위에 올라야 할 인물의 감정선과 인과 관계가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소재의 잠재력과 실제 구현 사이의 거리가 너무 컸던 영화였습니다.
Q. D-WAR가 현대적 관점에서 재평가받을 여지가 있나요?
A.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시장을 직접 겨냥한 시도로서의 역사적 의미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크리처 디자인의 독창성이나 이무기 설화를 대형 스펙터클로 구현하려 한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다만 서사 구조와 개연성, 미장센의 완성도가 동반되지 않는 한 작품성 측면의 재평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D-WAR를 다시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진심과 실력이 반드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심형래 감독의 집착에 가까운 진정성은 인정합니다. 400억을 쏟아붓고, 할리우드를 향해 이무기를 들이밀겠다는 결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민족주의 감성에 기댄 흥행 전략이 서사의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국뽕 마케팅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비판적 수용이 차단됐을 때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텍스트로 보는 게 오히려 유용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보니 두 번째 감상이 첫 번째보다 훨씬 많은 걸 남겼습니다. D-WAR가 궁금하다면 완성도를 기대하기보다 한국 영화사의 특수한 한 장면으로 접근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