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안녕하세요》의 결말과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됩니다. 홀로 남겨진 열아홉 살 박수미는 보육원에서 받은 상처와 생활고, 학교에서 겪은 따돌림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느낀 수미는 결국 삶을 포기하려 하지만, 그 순간 호스피스 병동의 수간호사 서진이 나타납니다.서진은 수미에게 섣부른 위로나 동정을 건네지 않습니다. 수미가 느끼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들어준 뒤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을 찾아오라며 명함을 건넵니다. 죽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뜻밖의 말을 남기면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됩니다.죽는 법을 배우러 찾아간 호스피스서진을 따라 늘봄 호스피스를 찾아간 수미는 예상과 전혀 다른 풍경을 마..
2007년 842만 관객.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가 D-WAR였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400억 원이라는 제작비, 그리고 그 돈으로 완성된 결과물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이무기 설화라는 한국 고유의 전설을 할리우드 도심 괴수물 문법에 얹어 만든 이 영화가, 왜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국뽕 마케팅이 흥행을 만든 방식D-WAR의 흥행을 설명할 때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보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제가 직접 당시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영화관 밖에서 이미 승부가 상당 부분 결정돼 있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 기제가 바로 민족주의적 감성 마케팅, 즉 국뽕 마케팅입니다. 여기서 국뽕이란 과도한 민족주의 감성에 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무대 공연을 그냥 카메라로 옮긴 수준일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극장 좌석에 앉아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이듬해 봄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뮤지컬 문법 위에 얹어 스크린으로 소환한 작품입니다. 역사가 이미 결말을 알려주는 이야기인데도 손에 땀이 쥐어졌다는 게,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말입니다.뮤지컬 영화, 무대와 스크린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라고 하면 립싱크(lip-sync), 즉 미리 녹음된 음원에 배우의 입 모양을 맞추는 방식이 업계 표준처럼 통용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을 보기 전까지 저는 관동대지진이 단순한 자연재해였다고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1923년 9월 1일, 규모 7.8의 대지진이 일본 간토 지방을 강타한 직후 벌어진 일—수천 명의 조선인이 아무 죄 없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서야, 이 역사를 왜 지금껏 몰랐는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재난 앞에서 국가 권력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의 무게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이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재난이 만들어낸 학살의 구조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을 진앙으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5분 간격으로 세 차례 이어진 이 연속 지진은 규모 7.4와 7.2의 여진을 동반했고, 점심 준비로 불을 피우던 목조 건물들이 ..
트라이앵글이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이 39주 연속 음악방송 2위를 기록한 발라드 가수를 제치며 가요계를 평정했다는 설정, 《와일드 씽》은 이 황당한 전제 하나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상의 아이돌 그룹에 과연 감정이입이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트라이앵글의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정체입니다. 레트로 감성과 슬랩스틱: 이 조합이 실제로 작동하는가일반적으로 레트로 감성을 내세우는 영화는 향수 팔이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와일드 씽》은 그 선을 꽤 영리하게 넘어섭니다.이 영화가 재현하는 2000년대 초반 가요계 디테일은 꽤 집요합니다. 여기서 레트로 감성이란 단순히 낡은 패션이..
영웅의 희생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 사람의 뇌를 복제해 전투 병기로 쓰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이걸 헌정이라고 부르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넷플릭스 영화 를 보는 내내 이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후 붕괴 이후 우주 셸터라는 독창적인 설정 위에서, 인간의 뇌를 복제해 AI 용병을 만든다는 발상은 분명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그 날 선 아이디어가 마지막 30분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고 나서 꽤 복잡한 감정이 남았습니다.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설정은 얼마나 탄탄한가영화는 인류가 환경 파괴로 지구 거주 불가 판정을 받은 이후, 우주 공간에 약 80여 개의 셸터를 건설해 생존을 이어가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 셸터들 중 일부가 영토 확장을 명분으로 다른 셸터들을 공격하면서 이른바 ..
솔직히 예고편 첫 장면을 봤을 때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마동석 액션 영화라고 가볍게 틀었다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이 이어진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대지진 이후의 세계, 파충류 돌연변이, 미친 과학자까지 — 예고편 하나에 이 정도 정보가 압축돼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직접 예고편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봤고,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겼습니다.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이어지는 세계관제가 직접 예고편을 멈춰가며 확인해봤는데, 시작 30초 안에 두 개의 상반된 장면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대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진 도시 폐허, 그리고 바로 다음 컷에서 군인들이 차를 타고 멀쩡히 순찰하는 장면입니다. 처음엔 편집 실수인가 싶었는데, 이건 의도적인 시간 간격 표현이..
솔직히 저는 '골프'가 영화의 핵심 무대가 된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습니다. 4조 원짜리 국책 사업을 라운딩 한 판으로 결판 낸다는 설정이 과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극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정우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로비》는, 기술력 하나만 믿고 뛰어든 창업가가 로비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지를 골프라는 친숙한 소재로 빈틈없이 풀어낸 블랙 코미디입니다.윤창호가 처한 문제 — 기술보다 로비가 센 세계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이겁니다. '이 사람, 진짜 억울하겠다.' 주인공 윤창호는 무선 충전 기술을 자동차와 결합한 스타트업 대표입니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이미 대기업 수준이라고 불릴 만한데, 4조 원 규모의 국책 사업 입찰에서는 번번..
솔직히 바둑 영화라는 말에 처음엔 좀 망설였습니다. 바둑 규칙도 잘 모르고, 돌 놓는 장면이 주를 이루면 지루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이병헌·유아인 주연의 영화 《승부》는 바둑판 위의 수읽기보다 두 천재가 한 지붕 아래서 충돌하는 심리전이 핵심이었고, 그 밀도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응창기배, 세계 바둑 판도를 바꾼 그 대회영화는 1988년 제1회 응창기배(應昌期杯) 결승 최종국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여기서 응창기배란 대만의 바둑 후원자 응창기가 창설한 세계 최초의 프로 기사 세계 선수권 대회를 말합니다. 당시 세계 바둑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던 건 중국과 일본이었고, 한국은 국내에서야 조훈현 9단이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은 아직 물음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