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느꼈을 겁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상급자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뒤집히는 그 황당함을. 저도 그 감각을 기억하는데, 영화 를 보는 내내 그 기억이 자꾸 겹쳤습니다. 준비도 안 된 홍보 장교가 최전방에 내던져지고, 거기서 죽고 또 죽는 이야기. 단순한 SF 블록버스터로 소비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비전투원을 전장에 던지는 군 지휘 체계의 폭력성영화의 출발점은 사실 꽤 불편합니다. 빌 케이지 소위는 총 한 번 제대로 쏴본 적 없는 홍보 장교입니다. 전쟁의 얼굴을 대중에게 팔아온 사람이지, 직접 싸워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사령관의 일방적인 명령 하나로 엑소 슈트(Exo-Suit)를 두른 채 노르망디를 연상케 하는 버밍엄 상륙작전 최전선에 투..
국가 최고 지휘관이 적에게 정신 지배를 당하고, 2인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권좌를 향해 침묵한다. 스타쉽 트루퍼스 3편은 단순한 버그 소탕 액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구조가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예비역 중사 출신으로서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지휘 체계가 무너진 전장이 얼마나 처참한지 몸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다르게 읽힙니다. 국정농단 — 공군 원수가 버그에 정신 지배당한 날군 생활을 하다 보면 상관의 판단력을 의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차와 체계가 그것을 막아주지만, 이 영화는 그 체계 자체가 뚫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아누키 공군 원수는 로쿠산 방어 기지 방문 당일, 전기 펜스..
트라이앵글이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이 39주 연속 음악방송 2위를 기록한 발라드 가수를 제치며 가요계를 평정했다는 설정, 《와일드 씽》은 이 황당한 전제 하나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상의 아이돌 그룹에 과연 감정이입이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트라이앵글의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정체입니다. 레트로 감성과 슬랩스틱: 이 조합이 실제로 작동하는가일반적으로 레트로 감성을 내세우는 영화는 향수 팔이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와일드 씽》은 그 선을 꽤 영리하게 넘어섭니다.이 영화가 재현하는 2000년대 초반 가요계 디테일은 꽤 집요합니다. 여기서 레트로 감성이란 단순히 낡은 패션이..
학부모 모임 자리에서 누군가 "요즘 넷플릭스에 길복순 올라왔던데 봤어요?" 하고 물었을 때, 저는 이미 두 번 본 뒤였습니다. 전도연이 수성펜 하나로 목검 든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감각,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남은 건 쾌감보다 묘한 불편함이었고, 저는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킬러 설정이 매력적인 이유, 그리고 그게 통하는 이유영화 속 길복순은 킬러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탑급 청부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사춘기 딸의 교육 문제로 상담 선생님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이기도 하죠. 이 두 정체성의 충돌이 영화 전반을 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캐릭터 설계가 꽤 영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영화 ..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진짜 공포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넷플릭스 액션 영화 는 휴전선 인근에서 발병한 DMZ 바이러스가 10개월 만에 북한 인구의 3분의 1을 감염시키고 미국 내 감염자만 15만 명에 달하는 설정을 깔아놓습니다. 숨 막히는 원테이크 액션 연출은 분명 볼거리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과연 이 스케일의 팬데믹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치료제를 손에 넣으려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이 바이러스보다 더 먼저 사람을 죽이지 않을까요?DMZ 바이러스가 현실이라면 — 지정학적 딜레마영화의 세계관은 꽤 정교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DMZ 바이러스는 휴전선 인근에서 발원해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북한 인구의 ..
영화관을 나오면서 "재밌었다"는 말이 입 끝에서 맴돌다가 그냥 삼켜버린 적이 있습니다. 귀공자가 딱 그랬습니다. 킬러 캐릭터의 유쾌함에 웃다가, 극 중 마르코가 처한 현실이 실제 코피노 문제와 겹쳐 보이는 순간 뭔가 찜찜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 영화가 과연 무거운 사회 이슈를 제대로 다뤘는지, 아니면 그냥 소비하고 끝낸 건지 — 그 질문을 붙들고 이 글을 씁니다.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었다고 생각하니, 인간애의 실종이 느껴 집니다. 절대로 이러한 일이 발생되어서도 설계하여서도 안됨을 인지하여야 할것 입니다 코피노 문제, 영화는 얼마나 진지하게 다뤘나코피노(Kopino)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코피노란 Korean과 Fili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