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피를 탐하는 신도들과 몸에 거대한 뱀 문신을 새긴 법사, 100년 동안 부활을 기다려온 폐쇄적인 마을이 있습니다. 영화 삼악도는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가상의 사이비 종교 ‘삼선도’가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미스터리 오컬트 공포물입니다. 탐사 프로그램 PD와 일본인 기자가 사라진 종교의 흔적을 따라 외딴 마을로 들어가면서 봉인된 피의 예언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라지지 않은 사이비 종교 삼선도영화 속 삼선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교주 사토 준이치가 조선의 산골 마을에서 만든 사이비 종교입니다. 음양사 출신인 준이치는 자신이 영적인 존재와 소통할 수 있으며 뱀의 기운을 받은 특별한 인간이라고 주장하면서 신도들에게 숭배받습니다.삼선도는 덕산 일대에 성지를 세우고 사람들을 지배했지만 광복을 ..
좀비 바이러스로 한반도 전체가 봉쇄된 지 4년. 영화 는 그 폐허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순수한 오락 영화로 즐겼는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카체이싱보다 오히려 난민 취급을 받는 정석의 눈빛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됐나일반적으로 는 의 직접 속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보니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영화에 가깝습니다. 전편이 열차라는 밀실 공간에서 공포를 쌓아 올렸다면, 이번엔 폐허가 된 도시 전체가 무대입니다.포스트아포칼립스(Post-Apocalypse)란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서사 장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와 법이 사라진 자리에 ..
넷플릭스에서 제8일의 밤을 보다가 잠을 못 잔 적이 있습니다. 마귀의 두 눈이 봉인에서 풀려 징검다리를 하나씩 밟으며 다가온다는 설정이 단순한 공포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컬트(occult) 장르, 즉 초자연적 현상이나 주술을 소재로 한 공포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 뒤에, 복수와 죄책감이 사적 폭력으로 어떻게 번지는지가 불편하리만치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가 남기는 불쾌감은 귀신 때문이 아니라 인물들의 선택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오컬트 설정 속 징검다리 전설의 구조영화는 2500년 전 부처가 마귀의 두 눈을 각각 동쪽 골짜기와 서쪽 사막에 봉인했다는 전설에서 출발합니다. 문제는 한 인류학 교수가 서쪽 사막에 숨겨진 붉은 눈의 사암을 발굴했다고 주장하면서 시..
극장 안이 숨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습니다. 두 손을 꽉 쥔 채 스크린만 바라보다 나왔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개봉 일주일 만에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단순히 무섭다는 수준이 아닌 악지·첩장·음양오행이라는 촘촘한 설정이 맞물리며 러닝타임 내내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자리가 왜 악지인지, 알고 보니 더 무서웠습니다영화를 보기 전부터 한 가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풍수사가 그토록 기겁하며 자리를 피할 만큼 '나쁜 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걸까요?극 중 풍수사 김상덕이 현장에 도착해 본 것들을 떠올려보면 그 답이 보입니다. 산 정상이라 바람이 강해 기운이 흩어지는 전형적..
수십 년 만에 낯선 친척의 부고를 받고 얼떨결에 선산을 상속받는다는 설정, 현실에서도 드물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먼 친척의 유산 정리 자리에 어색하게 앉아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드라마 의 첫 장면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탈륨 독살부터 엽총 살인까지, 단순한 유산 분쟁이 걷잡을 수 없는 강력 범죄로 번지는 전개가 섬뜩하면서도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상속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 배경과 맥락드라마 의 출발점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균열입니다. 대학 시간강사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윤서하가 경찰로부터 삼촌 윤명길의 사망 소식을 듣는 장면, 제가 직접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생각해 보았을 때 서하의 멍한 반응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여섯 살에 아버지가 떠난 뒤..
솔직히 저는 2022년에 지우학 시즌 2 제작 확정 소식이 나왔을 때, 빨라도 2024년이면 나오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7월에야 겨우 첫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좀 허탈했죠. 무대를 서울 전체로 확장하고 면역자들의 생존기를 다룬다는 예고는 분명 흥미롭지만, 3년 넘게 기다린 팬 입장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밀려오는 게 솔직한 감정이었습니다. 서울 확장, 기대보다 먼저 든 생각일반적으로 시즌 2는 무대를 넓히면 더 스펙터클 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게 반드시 좋은 신호는 아닙니다. 시즌 1에서 효산시라는 폐쇄 공간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공간이 너무 넓어지면 그 밀도가 흐려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그런데도 이번 시즌 2가 서울을 ..
킹덤 시즌2는 좀비 크리처물과 조선 시대극이라는 두 장르를 결합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상 가장 높은 비한국어권 시청 점유율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도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바로 이어 봤는데, 몇 장면에서는 진짜 소름이 돋았고 또 몇 장면에서는 "이게 맞나?" 싶은 아쉬움도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킹덤 시즌2 명장면, 제가 직접 꼽은 이유시즌2에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안현 대감의 등장입니다. 계략에 막혀 조학주를 제거할 마지막 수단마저 무너진 그 순간, 멀리서 깃발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는 연출은 지금도 생각하면 눈앞에 선합니다. 좀비가 된 안현 대감이 세자 이창의 무리를 구하기 위해 직접 앞장서는 그 장면에서 저는 처음으로 좀비 캐릭터에게 응원을 보냈습니다.안현 대감은 3년 전 수망촌..
솔직히 저는 처음 킹덤을 볼 때 그냥 좀비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좀비보다 인간이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죽은 왕을 되살리고, 그로 인해 번진 전염병을 군대로 틀어막으려 한 조학주의 선택이 결국 경상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서, 이게 단순한 공포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보겠습니다. 권력 남용이 재난을 만드는 방식킹덤 시즌1의 핵심 갈등은 좀비가 아니라 조학주라는 인물에서 시작됩니다. 영의정 조학주는 세자의 왕위 승계를 막고 자신의 딸 계비 조 씨가 낳을 아이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이미 사망한 왕을 생사초(生死草)로 되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여기서 생사초란 드라마 속 설정상 죽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식..
솔직히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뭔가 엄청난 걸 본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본 건지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됐거든요. 나홍진 감독의 신작 는 외계인 침공이라는 고전적인 SF 공포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실제로는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끊임없이 뒤집는 영화입니다. 결말의 당혹감은 어쩌면 의도된 것이고,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세계관이 숨어 있습니다. 영화 호프의 세계관: 게르트 제국과 불시착의 진실제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외계인들이 처음부터 지구를 침략하러 온 존재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독과 배우들의 공식 인터뷰, 그리고 이동진 평론가와의 대담을 찾아 읽고 나서야 이 전제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상..
영화관에서 를 보고 나오는데 같이 간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반부는 진짜 무서웠는데, 뒤로 갈수록 뭔가 달라진 것 같아." 그 한마디가 정확히 제가 느낀 감각을 건드렸습니다. 전반부의 팽팽한 오컬트적 긴장감과 후반부의 크리처 액션이 한 영화 안에서 충돌하는 느낌, 그 묘한 균열이 이 작품의 전부이자 한계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전반부가 압도적인 이유 — 음양오행이 화면을 지배할 때비행기 창밖으로 태양이 구름에 가렸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감독 보통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양(陰陽), 즉 빛과 그림자,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화면 구도 자체로 표현하는 방식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쁜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의 뼈대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