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목발 없이는 걷기 힘들었던 고등학생에게 어느 날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 소문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보다 친구를 지키고 부모님을 다시 만날 방법을 찾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진짜 영웅을 만드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문이 카운터로 선택된 이유이야기는 한 형사가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려다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전화를 받은 형사와 그의 가족도 동시에 공격을 받고, 어린 아들 소문만이 살아남습니다. 소문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친구 웅민과 주연의 사랑을 받으며 씩씩한 고등학생으로 성장합니다.어느 날 소문과 친구들은 맛집..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 김낙수가 그냥 꼰대 부장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불편한 지점이 생겼습니다. 저 사람이 화내는 이유가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한 중년 직장인이 임원 승진을 앞두고 무너져가는 과정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웃기면서도 등이 서늘해지는 드라마입니다.20년 근속이 만들어낸 불안의 구조김낙수는 거대 통신사 AC에서 20년 넘게 버텨온 부장입니다. 서울에 자가 아파트도 있고, 대기업 직함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성공한 삶처럼 보이죠. 그런데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그 성공이 얼마나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인지가 드러납니다.핵심은 이른바 조직 내 생존 불안(Or..
부모는 언제부터 부모가 되는 걸까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몫을 조금씩 내어주면서부터일까요.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저는 애순과 관식의 사랑보다 그 사랑이 부모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광례가 애순을 위해 견딘 바다와 애순·관식이 금명을 위해 펼쳐놓은 삶의 그물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광례에서 애순으로 이어진 모성의 무게남편을 잃고 재혼한 광례에게는 두고 온 딸 애순이 있었습니다. 광례는 제주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따며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마음속에서는 한 번도 딸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전복 백 개를 주고 엄마의 하루를 사고 싶다”는 애순의 마음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는 모녀의 슬픔을 그대로 드러냅니다.눈..
탈영병은 왜 도망쳤을까요. 군 생활을 해본 분이라면, 혹은 제대한 지 오래됐더라도 그 질문 앞에서 선뜻 "규칙을 어긴 거잖아"라고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탈영이라는 사건의 뒤편에 쌓인 반복적 폭력과 외면의 역사를 꺼내 놓습니다. 제가 직접 군 생활을 하며 비슷한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을 때, 그때의 불편함이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다시 살아났습니다. 군대 폭력, 우리는 왜 그걸 '어쩔 수 없다'고 불렀나신병 시절, 생활관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붓는 장면을 봤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분위기를 깨면 다음 표적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후임은 "괜찮습니다"라고 했지만, 밤마다 잠..
도박판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좋은 패일까요, 아니면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습관일까요.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을 보면서 저는 카드보다 사람의 리듬이 먼저 읽힌다는 말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메이드 패를 잡았을 때와 블러핑할 때 카드 놓는 속도가 달라지고, 콜을 외치는 박자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순간 상대는 이미 패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작품은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범죄 오락영화이면서도, 결국 인간의 욕망과 자기기만이 어떻게 삶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카드보다 먼저 읽히는 것: 습관과 블러핑의 심리전초반 포커 장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패의 서열보다 사람의 행동입니다. 메이드가 됐을 때 카드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블러핑을 할 때는 평소보다 반 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콜을 외칩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손에 땀을 쥐면서도 불편한 감정이 동시에 올라오는 경험을 하신 적 있습니까? 저는 ENA 드라마 를 보면서 정확히 그 감각을 느꼈습니다. 법 앞에 평등해야 할 현직 판사가 아들의 뺑소니 사망 사고를 숨기기 위해 직권 남용과 증거 인멸, 사법 방해를 차례로 저질러 나가는 이 서사가 숨 막힐 만큼 잘 만들어져 있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윤리적 문제는 꽤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청렴한 판사가 사법 방해자가 되기까지일반적으로 법조인이 등장하는 범죄 드라마에서는 '권력이 법을 비틀다'는 구조가 공식처럼 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이 조금 다른 지점을 건드린다고 느꼈습니다. 가해자가 비리 검사도, 부패한 정치인도 아닌, 오히려 공사 현장에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 오고 법정에서 노동자 여섯 명의..
1분에 1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는 탑 쇼호스트가 정작 잠 한 숨 제대로 못 잔다면, 그건 성공한 삶일까요, 아니면 망가진 삶일까요. SBS 수목 드라마 을 보다가 제가 멈춰버린 장면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담예진이 서랍에서 수면제를 꺼내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웃음보다 먼저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번아웃 — 매진 도파민의 이면드라마 속 담예진은 누적 판매액 1조 원을 돌파한 쇼호스트입니다. 라이브 방송 중 제품을 직접 창문에 문질러 닦고, 고층 빌딩 외벽에서 시연을 펼치며, 콜 수가 폭주하는 순간을 "매진"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해 즐깁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봤을 때는 통쾌하고 유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그 뒤에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았습니다.예진은 만성 불면증(chro..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극단적인 감정노동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영화 는 주거 빈곤과 돌봄 노동의 굴레에 갇힌 한 여성이 우발적 사고 하나로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보는 내내 "이건 픽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돌봄 노동의 민낯 — 요양보호사 문정이 사는 방식일반적으로 요양보호사는 "노인을 돌보는 따뜻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실감한 건 전혀 달랐습니다. 주인공 문정은 비닐하우스, 그러니까 농업용 비닐 구조물 안에서 생활하며 치매 노인 가정을 오가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소년원에 있는 아들과는 일주일에 한 번 영상 통화를 ..
2007년 842만 관객.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가 D-WAR였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400억 원이라는 제작비, 그리고 그 돈으로 완성된 결과물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이무기 설화라는 한국 고유의 전설을 할리우드 도심 괴수물 문법에 얹어 만든 이 영화가, 왜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국뽕 마케팅이 흥행을 만든 방식D-WAR의 흥행을 설명할 때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보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제가 직접 당시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영화관 밖에서 이미 승부가 상당 부분 결정돼 있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 기제가 바로 민족주의적 감성 마케팅, 즉 국뽕 마케팅입니다. 여기서 국뽕이란 과도한 민족주의 감성에 기..
저도 처음엔 그냥 "예쁜 드라마"로 봤습니다. 공유의 얼굴, 캐나다 퀘벡 풍경, 메밀꽃 꽃말. 그런데 1화부터 3화를 몰아보고 나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낭만적인 장면들 사이사이에 은탁이가 겪는 학대와 방치가 너무 가볍게 처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화면이 아름다울수록 그 불편함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판타지,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도깨비의 세계관은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수백 년 전 전쟁 영웅으로 백성들에게 '신'이라 불렸던 김신은, 간신의 이간질로 의심을 품은 어린 왕에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합니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죽었지만, 충직한 가신의 헌신 덕분에 영생을 얻게 되죠. 이 '저주로서의 불멸'은 드라마의 핵심 장치입니다.여기서 핵심..